
2월 24일 새벽 6시 18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25동 8층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1시간 18분 만에 잡혔지만, 이미 늦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 온 지 닷새 된 17세 여학생이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는 딸을 구하려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여동생과 위층 주민도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 인력 143명, 장비 41대가 출동했지만 세대 안에는 스프링클러가 단 하나도 없었다.
■ 왜 스프링클러가 없었나?
(출처: 한국경제, 서울소방재난본부)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47년 된 노후 아파트다. 현행 소방법은 2005년 이후 신축된 건물부터 아파트 전층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2005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스프링클러가 없어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에서 발생한 주택 화재 1만602건의 사망자 116명 전원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주택에서 나왔다. 우연이 아니다.
■ 소방차도 늦었다 – 이중주차의 문제
(출처: MBC 뉴스데스크, 머니투데이)
이번 화재에서 또 하나 지적된 문제는 소방차 진입 지연이다. 은마아파트는 14층 4,424세대 규모의 대단지지만 지하 주차장이 없다. 고질적인 이중주차 때문에 화재 당일 소방차와 구급차가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주민들이 직접 차를 밀어 길을 터줬다는 증언도 나왔다. 초기 진압이 몇 분만 빨랐어도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
■ 내가 사는 아파트는 괜찮을까? – 스프링클러 의무화 기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는 단계적으로 강화됐다. 1992년 개정 소방법은 16층 이상 아파트에만 적용했고, 2005년에 11층 이상으로 확대됐다가 2020년에야 6층 이상 신축 건물 전체로 확대됐다. 단, 모든 기준은 해당 시점 이후 신축 건물에만 적용되며 기존 건물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즉 2005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라면 몇 층짜리든 스프링클러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입주할 때 혹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준공 연도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다.
■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스프링클러를 달 수 없는 구축 아파트라면 개인이 할 수 있는 대비가 있다.
첫째, 가정용 소화기를 반드시 비치하자. 소화기는 주방과 현관 근처 두 곳에 두는 것이 기본이다. 주방 화재가 가장 많고, 현관에 두면 초기 진화 후 탈출 시 활용할 수 있다. 유효기간(제조일로부터 10년)도 확인하자.
둘째,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달자. 현행법상 2012년 이후 모든 주택에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가 의무지만, 실제로 미설치 가구가 많다. 이번 은마아파트 화재에서도 "경보기 소리가 너무 작았다"는 주민 증언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1~2만 원대 제품을 구매해 천장에 부착하면 된다.
셋째, 복도식 아파트는 현관문을 잠그지 않는 것이 탈출에 유리하다. 이번 화재처럼 불길이 현관문까지 번진 상황에선 문을 잠그고 있으면 탈출 자체가 막힌다. 단, 보안이 우선이라면 잠그되 비상 시 신속하게 열 수 있게 숙지해두자.
넷째, 탈출 경로를 가족과 미리 공유하자. 새벽에 화재가 나면 판단이 느려진다. 비상구 위치, 대피 집합 장소를 이사 직후 가족과 한 번이라도 확인해두는 것이 생사를 가른다.
■ 마치며
은마아파트는 오래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9월 정비계획안이 확정돼 2030년에 49층 5,893세대 대단지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그 전까지는 수천 세대가 스프링클러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노후 아파트 소방 안전 소급 적용에 대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법이 바뀌길 기다리기 전에, 오늘 집에 소화기가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자.
주요 참고 출처
- 서울소방재난본부 발표 (2026.02.25)
- 경향신문 (2026.02.24)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41645001
- 한국경제 (2026.02.25)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22526477
- 머니투데이 (2026.02.25) https://www.mt.co.kr/society/2026/02/25/2026022505060819974
- MBC 뉴스데스크 (2026.02.24) https://imnews.imbc.com/replay/2026/nwdesk/article/6802972_37004.html
- 서울신문 (2026.02.25) https://www.seoul.co.kr/news/society/accident/2026/02/25/20260225010006